몇 해 년 전 오른팔이 마비되어 거의 옆구리에 붙어버린 채 생활하던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심성(心性) 치유 상담 자리에서 만난 그 어르신은 친자식이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무시하고 사업을 한답시고 평생 모은 돈을 날려 버렸을 때, 그때 받은 충격으로 일순간 몸이 굳어져 버리고 팔도 마비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팔 근육에는 특별한 외상은 없는 듯 보였지만, 몇 년째 그렇게 하여 살아왔다는 어르신의 이야기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심한 충격을 받았으면 팔과 근육이 마비될 정도라니, 그것도 오랜 시
예술 분야는 그 어느 직종보다 내면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심신을 정화하는 데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예술인의 역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더욱 이러한 인식에 공감하게 됩니다. 물론 사회를 정화하기 위한 노력은 예술 분야뿐만이 아니라, 각종 단체나 기관에서 꾸준히 전개해 오고 있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기관들의 공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예술은 사회 정화는 물론, 인간의 내면을 안정시키는 역할에서 어떤 분야 못지않게 지대한 공적을 남기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다소 쌀쌀함이 깃들기는 해도 완연한 봄날입니다. 이 봄을 잇기 위해, 이 따스함을 잇기 위해 봄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인내하였을까요. 겨우 내내 얼어붙은 대지 위로 부는 바람에 힘들어하며, 한설(寒雪)과 냉기에 움츠린 심기(心氣)를 달래면서 그렇게 봄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때로는 엄동설한 긴 밤을 고독으로 보내며 강하고 억센 비바람과 태풍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태를 유지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사계절이 순환하는 동안 거친 기상과 드센 동풍(凍風)에 휘둘리며 마음 아픈 적도 있었을 것이고, 뜨거운 햇살 아래 비지땀을 흘리며 봄 맞을
설천면 문항리 남해 3·1운동 발상 기념탑 앞에서 거행된 3·1절 기념식. 오늘의 정세가 그때의 암울했던 시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귓전을 울리는 만세 소리는 가슴에 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그 묘한 여운, 아마 그것은 여전히 우리가 담아내지 못한 대통합에 대한 아쉬움은 아닐까요. 아니 어쩌면 105주년이라는 장구한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는 진리에 대한 목마름,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의 샘을 정착시키지 못한 아쉬움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독립 만세 운동을 불렀던 당시의 열정만큼이나 오늘에 있어 우리의
설 명절, 모처럼 문중 친족이 정말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하였습니다. 만남이야 늘 상 있는 일이지만, 문중 친족이 모두 모일 수 있는 날은 명절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날따라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안부와 함께 문중의 사명과 얼을 계승하자는 내용도 그렇고, 향후 조성될 문중 묘지 문제를 비롯하여 시대가 바뀜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장례문화를 두고 열띤 토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이 많이 흘러 모임을 끝내려는 순간, 참석한 한 분이 “아!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이 참 좋았지. 이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안다, 알고 있다는 행위는 사물의 본질이나 상태를 인지하였거나 이해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지식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경험을 통하여 인지하는 연륜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안다, 알고 있다는 것을 앎이라고 표기해 봅니다. 이 앎은 그냥 우연히 생겨났다기보다 반복적인 학습의 과정을 통하여 성취되기도 합니다. 또한, 앎을 이끄는 방편도 의식이 안정적인가 아니면 감정적인가에 따라서 앎이나 안다는 작용이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비록 안다는 것에 뚜렷한 기준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주재하는 당사자
새해가 밝았습니다. 아니 새날이 또 밝았습니다. 떠오르는 해야 어제와 다를 바 없지만, 새해 첫날은 시작의 의미와 새로움이라는 의미가 새겨져 있기에 그 기운이 또한 평소와 다른 감회를 느끼게 해 줍니다. 지난해와 새해는 단 하루 상관이긴 하지만,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의미를 두면서 심중을 달래는 이러한 다짐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관점이 다 틀리므로 새로움의 여부를 객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어느 분은 단, 한순간에 깨달아 새로움의 경지에 이르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지극한 공덕이 있어도 새로움에 도
필자가 마을 어귀에 들어설 때면 늘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노모(老母) 한 분이 나지막한 돌담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어떤 때는 누군가가 그리워서, 또 어떤 때는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가 그만일 것 같아 앉아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분이 전부일까요. 약간은 쌀쌀한 날씨임에도 햇빛이 들기만 하면, 어김없이 돌담에 앉아 산을 응시하는 모습은 무언가 애절한 사연이 있는 듯합니다. 그 사연이란 마치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아니 꼭 올 것이라는 희망을 마음에 담아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정
지금은 흔치 않은 이야기이지만, 60년대에서 70년대 살았던 분들에게는 연필에 담긴 소담한 추억을 잊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당시는 농경시대에서 산업화 초기로 이어지는 시기라 여러 가지로 변화의 기류가 형성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5일 장인데 장이 설 때면 갖가지 새로운 물건들이 많이 나와 구경하던 재미에 흠뻑 빠지곤 하였습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기존의 것을 능가하는 전혀 새로운 물건은 그야말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특히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이 있었다면 연필이었습니다. 먹과
가을의 특징이라 할 선선한 기후가 지나가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몸과 마음을 엄습합니다. 이런 날씨를 보면 가을이 어느 정도 우리 곁에 머물다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딱히 초겨울이라 명명하지 않더라도 늦가을의 정취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분위기를 엮어낼 11월, 이때쯤이면 예나 지금이나 특히 우리의 시선을 끄는 행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조상을 기리는 시제(時祭)나 시향(時享)을 모시는 일입니다. 선대 조상을 모신다는 차원에서 시제, 시향은 조상의 얼을 계승하고 기린다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경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보고 듣고 느끼는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하는 시각이 아닐까요. 사람의 오감 (눈, 귀, 코, 입, 혀) 중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다섯 감각 중에서 그래도 그 범위가 가장 넓고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감정을 건전하게 이끄는 촉매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서에다 시각은 고도의 정신력을 정립시킨다는 차원으로까지 이어지니, 그 의미가 실로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 시점에서 사물이
세상이 날이 갈수록 복잡해집니다.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복잡해진 것 같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복잡한 것 같습니다. 자동화된 기계에 의하여 생활에 편리한 갖가지 물건이 수없이 쏟아지고, 스마트폰이 생활의 축으로 자리 잡은 현실에서 편한 줄만 알았던 날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알 수 없는 복잡으로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심란해진 걸까요? 심란의 정도를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까닭 없는 불안감이 몸과 마음을 엄습하는 형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보는 관점에서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문명
선선한 가을바람이 10월 남해의 산야(山野)를 적십니다. 사계절 내내 부는 바람이 각기 특색이 있다고 하지만, 가을바람만큼 산야를 쾌적하게 해주는 바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 쾌적함과 신선함에 여름 더위에 지친 생기를 되찾고, 내면에 무심(無心)의 바람마저 일으킬 기세이니, 가을바람의 역동성을 어찌 예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잦은 생각과 감정에 얼룩진 내심을 정화하고도 남을 가을바람에 감사를 느끼며, 여느 날처럼 동네 앞 농로(農路)를 거닙니다. 고요에 물든 농촌 들판은 아직 추수하지 않은 벼 이삭이 가을바람에 출렁이고, 어떤 때
결실과 풍요의 계절 가을입니다. 보통 이때가 되면 누런 벼와 잘 익은 홍시가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빨갛게 익은 감 홍시가 즐비한 마을 그리고 황금색으로 물든 논 자락은 바라보기만 해도 따뜻한 정과 풍요를 느끼게 해줍니다. 얼마나 기다리던 결실이었던가요. 아니 얼마나 바라던 풍요인가요. 지난, 여름 어느 해에 견주어도 유래가 없었던 이상 기후에 노심초사하며 정말 올해는 수확이 제대로 되려나 걱정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이처럼 가슴 뜨거운 풍요가 펼쳐지는 지금, 바라만 보아도 가슴을 뜨겁게 할 풍요가 일 년 내내 계속된다면
작년 이맘때쯤 그래도 동네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부부의 출산 소식에 마을 전체가 기뻐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이후 일 년이 지난 오늘 아침, 이장이 방송으로 아이가 첫돌을 맞이하여 저녁에 돌잔치를 하니 많이 참석해달라는 내용을 전합니다. 그 방송을 들으니, 마치 필자의 손자가 첫돌을 맞이한 것처럼 기뻤습니다. 60~70년대에는 한 가구당 5~6명 자녀의 출산이 다반사였던 시절에 비하면 첫돌 이야기가 나오는 자체가 생소하지만, 농촌의 현실에 비추어 마을에 아이가 태어나 첫돌을 맞이하였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큰 경사가 아닐
여름의 신록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가을로 이어지는 미묘한 변화도 길을 따라 흘러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길, 그 내밀한 정서에서 길은 마음을 밝히는 유무형의 등불이면서 문명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는 길라잡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길을 추인할 내면의 길 또한, 마음이 교차 순환하는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인간의 의식을 고조시키는 흔적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철학으로도 길은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중심축으로 그 참신성이 항상 이 순간의 길로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않습니다. 이 순간이 주는
우리는 늘 보고 들으며 느끼면서 사물을 인식하고 생각을 일으키며 감정을 작동시킵니다. 이러한 작용들이 평소에 수없이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그러한 일들에 무감할 뿐 아니라, 어떤 때는 별 의미를 두지 않기도 합니다. 이러한 감정도 어떤 경우에는 특별한 감성을 발휘할 때가 있는데, 가령 아름다운 장면을 보았다든가, 감동적인 모습을 경험하였을 때입니다. 이때가 되면 마음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맛보기도 하는데, 그 잔잔한 여운이 마음을 건전하게 이끄는 촉매제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 행위가 꼭 종교에만 국
또 비가 내립니다. 그리고 습한 날씨가 이어집니다. 금세 해가 반짝 나왔다가 얼마 안 가 먹구름이 일고 폭우가 쏟아집니다. 이로 인한 불쾌지수는 심리적 인정은 물론이고 더위마저 가세한 날씨에 더해 극도의 피로감만 더해갑니다. 이것도 재해라고 한다면 심신을 저하하는 재해임이 분명합니다. 정신적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이에 수반하는 생각, 감정, 느낌 등도 자연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이러할진대 자라나는 농작물이나 식물 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들도 의식이 있는 생명으로 적정하고 쾌적한 기후나 날
이른 아침, 평소 같으면 햇살이 동녘을 붉게 물들었을 때입니다. 잔뜩 찌푸린 장마를 동반한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지만, 여전히 눈에 띄는 아침 이슬은 변함없이 영롱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햇빛이 없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이슬, 그 영롱한 빛이 사라지지 않는 자연의 위대함에 동화가 되고 맙니다. 어쩜 이렇게 신비스러울 수가 있을까? 물이란 매체가 빛이 없는데도 어쩜 이렇듯 아름다운 형상을 엮어낼 수 있을까? 이 물은 주변 환경이 녹록하지 않음에도 어찌하여 어제와 닮은 모양과 색상을 어김없이 연출해 낼 수 있을까? 우연인가? 필
초여름이면 농부들을 가장 귀찮게 하고 성가시게 하는 것이 잡초와 풀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금세 솎아내도 또 자라나는 풀과 잡초의 성장 속도를 보면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필자로서도 말로만 듣던 풀의 성장력을 직접 경험해 보니 농부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가히 풀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입니다. 풀이 자라 논밭 주변을 뒤덮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작물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심각하다 못해 망연자실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풀이나 잡초가 처음 태어날 때부터 그 성